생활개혁협의회



건전한 결혼중개 서비스

(1) 맞선(오미아이)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중매결혼보다 연애결혼을 선호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연애결혼이 9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중매결혼은 부모가 자녀의 사진과 신상서를 중매인인 나코도(仲人)에게 주어 좋은 배필을 찾아주도록 부탁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는데, 최근에는 결혼전문기관이 많이 늘어나 나코도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과거 결혼은 가문의 중요한 일로 다루어 졌으며 개인의 의사와 취향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맞선을 수십 번이나 본 사람이 나오는가 하면 인터넷을 이용한 만남도 있고 결혼정보회사[켁콤방크(結婚バンク)]도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혼담은 자신이 위치하고 있는 곳에서 벗어나 보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새로운 상대를 만날 수 있고 상대방에 대해서 결정적인 정보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 혼담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중매인[나코도(仲人)]이다. 중매인은 신망이 있고 비밀을 간직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냉정한 판단력과 강력한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 선호되고 있다.


(2) 결혼식



일본의 결혼식은 거식(擧式)과 피로연을 합쳐서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거식으로는 신전식(神前式), 교회식(敎會式), 인전식(人前式), 불교식(佛敎式)이 가장 대표적이다. 신전식은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혼례로 일본에 들어온 유럽 선교사들이 서양의 교회에서 하는 결혼의식을 모방하여 만들었다. 교회식은 오늘날 일본에서 많이 행해지고 있는 결혼식으로 진행절차는 한국의 일반 결혼식과 식순이 유사하다. 인전식은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결혼식의 엄숙한 분위기를 벗어나 자유로운 절차에서 식이 진행되고, 신랑신부가 이벤트를 직접 마련할 수도 있다.

맞선이든 연애결혼이든 두 사람의 결혼 의지가 확고해지면 약혼을 하는데 약혼은 결국 사회로부터 두 사람이 인정받는 행위이므로 여기에는 증인과 증거가 되는 서류와 물건 등이 필요하게 된다. 그 때 주고받는 예물로 일본에서는 유이노오(結納)가 일반적이고 이것은 신랑·신부 양측이 돈이나 직물, 술과 안주 등의 물건을 교환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우리의 함 제도와 비슷하다. 우리와 비슷하게 일본에서 혼례(婚礼)는 크게 세 부분의 의식으로 나뉘는데, 약혼식이라고 할 수 있는 유이노오(結納), 그리고 결혼식과 피로연[히로오엥(披露宴)]이 그것이다. 유이노오 의식은 결혼 6개월 전부터 늦어도 3개월 전 안에 이루어지며 우리나라의 경우 대개 신랑 측으로부터 사주단자(四柱单子)를 받고 예단(礼緞)을 서로 교환하는데, 일본에서는 몇 가지 상징성을 띤 물건과 돈을 신랑 측이 신부 측에게 전달하고 신부 측은 답례로 작은 정성을 보낸다.

 

유이노오(結納)라는 말은 처음에 이이이레(言納)에서 유이이레(結納)로 바뀌고 그 중 뒷 글자인 이레()가 음독(音読)으로 바뀌면서 유이노오라는 말로 정착되었다. 그 예물을 유이노오힝(結納品)이라 하는데, 기본이 9품목이고 조금 줄여서 할 때는 7, 5, 3가지로 품목수(品目数)는 짝수가 아닌 홀수로 준비한다. 부부의 연()이 나누어 딱 떨어지듯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자는 일본인다운 배려가 숨어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의식의 유형화·형식화는 바로 여기서도 보인다. 그리고 이 예물은 상서로운 의미를 담고 있어 그 물건을 주고받는 것은 의미를 주고받는 것이며 이로써 약혼은 정식적인 것이 된다.

 

이 약혼은 지역에 따라 다르며 크게 관동식과 관서식으로 나눌 수 있다.

관동식은 예물을 하나의 판에 올려놓기 때문에 그 위에 장식하는 미즈히키가 평면적인데 반해서 관서식은 한판 위에 하나의 예물이 장식되고 물건에 제약이 없기 때문에 미즈히키 장식도 입체적이다. 물건의 명칭은 일본 각 지역의 풍습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나 기본 형식은 대개 갖추어져 있다.

기본 9가지 품목은 대개 다음과 같다.

노시(熨斗): 얇게 펴서 말린 전복을 놓고 그 위에 부부의 장수(長寿)를 기원하는 의미로 미즈히키(水引)로 만든 학()을 장식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쵸오노시(長熨斗)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미즈히키는 가는 실 여러 개를 합쳐 풀을 먹여 말리고 중앙에서 색을 발라 말린 끈을 말한다. 선물을 포장 할 때 두르며 경사에는 홍···은 따위를 쓰고 조사에는 흑·백을 사용한다.

코소데료오(小袖料): 예전에 예복을 보내서 생긴 말인데, 지금은 간단하게 유이노오킹(結納金)이라고 해서 보통 100만엥 정도를 봉투에 넣고, 그 위에 장수와 건강, 그리고 소나무의 초록색처럼 영원히 번영하라는 의미로 소나무[마츠()]를 장식한다. 지역에 따라 호오킹(宝金), 옴비료오(御帯料), 유이노오료오(結納料)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옛날에는 여성의 노동력의 댓가로 키모노라든가 오비·하카마 등이 보내졌고 요즘은 그것이 현금으로 바뀌었는데 현재는 민며느리 제도[요메토리콩(嫁取)]도 아닌 만큼 옛날의 의미는 퇴색되었다. 금액은 통상 남자 월급의 2~3배가 일반적이다.

타르료오(太留料): 타르란 원래 잔치에 쓰기 위한 술을 담은 나무통을 지칭하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나무술통 모양의 작은 장식과 2~3만엥 정도의 돈을 넣는다. 그리고 그 위에는 지조와 결백을 상징하는 대나무를 장식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카나이 키타류우(家内喜多留), 키타류우(喜多留) 등의 말을 쓴다.

고토부키 스르메(寿留女): 말린 오징어. 씹으면 씹을수록 맛을 내며 오래되어도 변치 않는 말린 오징어처럼 좋은 부부, 변치 않는 부부가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예물이다.

콤부(子生婦): 말린 다시마. 자식을 잘 낳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예물이다.

토모시라가(友白髮): 부부가 흰 머리가 되도록 같이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마[아사()]로 만든 흰 실을 준비하거나 노부부(老夫婦) 인형을 놓는다. 지방에서는 타카사고(高砂)라는 말로도 쓴다.

스에히로(末広): 흰 부채인데, 부채 살이 넓게 퍼지는 것처럼 가정의 번영과 행복을 기원하는 염원을 담은 예물. 그 위에는 거북이[카메()]를 장식한다.

마츠우오료오(松魚料): 카츠오부시(鰹節)를 일컫는 말인데 가다랭이를 말려서 얇게 저민 것이다. 예전에는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이것을 선물했으나 지금은 2~3만엥 정도의 돈으로 대신한다. 이 위에는 인내를 뜻하는 매화를 장식한다.

유비와(結美和): 약혼 반지인데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의 결실이란 의미로 썼다. 지방에 따라서는 優美和·結美環 등으로 쓰기도 한다.

 

9가지 품목을 다 준비하려면 큰 돈이 들기 때문에 흔히 3품목만 넣어서 약식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유이노오킹·노시·스에히로만 들어간다. 준비된 예물은 길일(吉日)인 타이앙(大安)의 오전 중에 나코오도(중매를 선 사람)가 신랑집에서 받아 신부집으로 가져간다. 신부집에서는 이것을 받아 방의 한 편에 있는 토코노마()에 장식한다. 유이노오는 남녀 각각이 서로의 맹세로 볼 것인가, 남자의 결혼 요청에 대한 여자의 승낙으로 해석 할 것인가에 따라 그 답례도 정식으로 할 수도 있고 단순하게 받았다는 사인만을 해줄 수도 있다.

관동지방에서는 전에는 남성에게 받은 금액의 반액 정도를 여성 쪽에서 답례로 했었는데 요즘에는 유이노오 중에서 반지에 대한 답례로 양복이나 시계를 선물하는 풍습이 늘고 있다. 츄우부(中部)나 킹키(近畿)지방에서는 색깔 바꾸기[이로가에(色替)]라고 하며 나중에 양복 대금이나 유이노오킹의 10%를 답례로 한다. 관서지방에서는 예물 답례[유이노오 가에시(結納返)]를 중매인을 통해서 신랑측에 보낸다. 여기에는 유이노오킹·노시·스에히로 등 약식의 3품목만 들어있고 돈은 남자가 양복이나 키모노를 마련해 입을 정도로 한다. 보통 유이노오의 금액은 1994년 통계에 의하면 남자가 평균 77.9만엥 여자의 답례는 10.0만엥이었다고 한다.

유이노오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신랑의 가족 이름도 표기해서 보내는 것이 예의이다.신부집에서는 받은 예물을 결혼식 전까지 토코노마에 진열해 놓거나 결혼식까지는 대개 3개월의 시간이 있으므로 먼지가 앉고 더러워지기 쉬우므로 일단 다시 상자에 넣었다가 결혼식의 초대장을 부칠 때에 다시 장식한다. 그리고 이 예물은 약혼의 증거물이기 때문에 결혼 후에는 불필요하므로 처분할 때는 적어도 목록만은 남긴다. 식이 끝나면 먹을 수 있는 것은 먹고, 나머지는 정월(正月)에 장식할 물건으로 고쳐서 보관하거나, 그대로 진쟈(神社)에 돈을 내고 보관을 의뢰하기도 하고 지방에 따라서는 신부가 결혼 후에 가지고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실 월급만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들은 어찌 보면 호화판인 이런 결혼식을 자기 힘으로 치르기가 힘들기 때문에 부모의 도움을 기대하기 힘든 경우, 아주 간소하게 하거나 아니면 뉴우세키(入籍)라고 해서 호적에 이름만 올리고 사진관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결혼은 옛날에는 주로 신부가 신랑의 집으로 시집을 가는 식의 결혼[요메토리콩(嫁取婚)]이 주류를 이루었기에 그 시대는 주거와 기본적인 생활용품은 신랑이 책임지고 신부는 자신의 몸치장과 노동과 그 용품을 두는 수납공간인 간단한 가구[요메이리 도오구(嫁入道具)]를 준비하면 되었다. 비용은 현재에는 남녀평등으로 반반씩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지금도 결혼식과 피로연에 대한 비용은 전액 신랑이 부담하는 곳도 있다. 구체적으로는 공동의 지출인 결혼식 비용·신혼여행·중매인에 대한 사례금 등은 반반 부담으로 하고 피로연에 드는 비용은 각각 초대한 사람 수만큼 부담하며 신혼살림에 필요한 금액은 평등하게 부담한다. 그리고 미용과 옷을 빌린 대금 등은 이용한 사람이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단 웨딩드레스에 필요한 부케의 값은 신랑 측이 전액 부담한다. 그것은 식장에 입장하는 신부에게 신랑이 꽃을 선사한다는 부케에서 기원한다.

(1) 가족제도

일본은 메이지유신 후 1872년부터 근대적 호적제가 시행되면서 모든 일본인이 대가족제도인 이에()’에 속하게 되었다.

이는 가장이 가족에 대해 지배권을 가지고 장남이 부모와 동거하며 아내를 맞이하고, 전통을 이어받아 이에()를 지켜 나가는 제도였다. 남성은 일, 여성은 집안일과 자녀양육을 도맡은 가족 형태 이며 보통 3세대 이상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1948년부터 민법개정에 의해 배우자의 선택, 상속, 재산권, 혼인과 이혼 등에 관하여 남녀 평등 원칙과 부부동성제(夫婦同姓制)가 적용되었다.

 

(2) 출산 및 의례

일본은 친가가 아닌 외가에서 자녀를 출산하는 것이 전통적이며, 출산 시 자른 아이의 탯줄은 버리지 않고 보존한다.

아이가 태어난 지 7일째 되는 날에 아이의 이름을 짓고 축하하는 것을 오시치야(七夜)’라고 하며. 남자아이는 태어난 지 31일째, 여자아이는 태어난 지 32일째에 첫 신전 참배를 하며 이를 오미야마이리(宮参)’라고 한다.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나면 아이가 밥을 처음으로 먹는 의식인 오쿠이조매()’라는 잔치를 하며, 백일상을 차려놓고 보통 밥, 생선, 젓가락, 돌멩이를 올려놓는다. 아이가 태어 난지 만 1년째에는 우리나라와 같이 돌잔치를 한다. 남자아이는 상위에 컴퓨터나 연필, 여자아이는 빗이나 반짇고리 등을 올려놓고 아이가 무엇을 집느냐에 따라 아이의 장래를 예상해본다.

 

(3) 자녀양육 및 교육

일본의 부모들은 자녀가 어릴 때부터 시쯔케(しつけ)라고 하는 인간관계 및 사회생활에 대한 예의범절을 가르친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교육시킬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기본으로 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迷惑をかけないこと)’이다.

 

 

 

 

 

<시쯔케에 있어서 부모의 마음가짐>

󰋯 아이와의 상호 신뢰감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부모가 모범을 보인다.

󰋯 타인과 조화로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친다.

󰋯 단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끈기 있고 계속적인 시쯔케가 되도록 한다.

󰋯 아이의 자존심이 상처받지 않도록 하고, 잘한 것에 대해서는 칭찬해 준다.

 

 

 

 

 

일본의 시쯔케는 한 인간을 독립적이고 개성 있는 사회인이 아닌 모나지 않은 사회인으로 길러내는 데 그 초점을 두고 있다. 일본의 정형화되고 규격화된 시쯔케의 영향으로 일본인들은 처음 대면했을 때 부담스러울 정도로 격식과 예의를 차리고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거나 미안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일본의 교육제도는 초등학교 6, 중학교 3, 고등학교 3, 대학교 4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학교 까지 의무교육으로 실시되고 있다. 일본은 고등학생의 40% 정도가 대학으로 진학하는 고학력 사회이다.

(1) 주거문화

일본은 습기가 많고 여름이 더워 개방적인 주택 구조가 특징으로 여름형 주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창이 많고 지붕이 높아 추운 겨울엔 부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방과 방 사이에는 후스마라는 미닫이 종이문이 있고 바깥쪽에는 쇼지라는 장지문이 있다.

일본의 건물은 높지 않고 목조건물이 많다. 이것은 일본의 가장 큰 자연재해인 지진에 대비하기 위함 때문인데 대신 화재에는 취약하다. 또한 목조건물은 방음이 잘 되지 않아 옆방뿐이 아니라 옆집까지 소음에 노출되기 쉽다.

일본주택에서 특히 주목받는 것은 접객용의 객실[자시키(座敷)]이 중시되는데 이것은 촌락 공동체에 있어서 잔치를 위한 공간이다. 집에 카미다나(神棚)나 부츠당(仏壇)을 설치하고 주인의 자리가 정해지는 것은 조상숭배와 가부장제와 관계가 밀접하다. 또한 일본전통주택은 습기가 많은 풍토 때문에 개방적이고 농업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토방[도마(土間)]이 많다. 또한 옷이나 식생활에 비해서 금기가 많았고 신분이나 격식에 따른 제약이 많았다. 많은 문화가 서양화되면서 주택문화도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였지만 기와지붕·목조·타타미·붙박이장[오시이레(押入)], 장지문[후스마()] 등의 기본적인 요소는 변함이 없다.

일본주택의 가장 큰 특징은 목조인데다 부서지기 쉽고 타기 쉽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으로 손쉽게 부수고 재빨리 지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반증인데 자연재해가 심한 편인 일본에서 견고한 주택문화가 발전했을 법한데도 오히려 다시 짓는 것에 중점을 둔다는 것은 자연재해의 불가항력을 더 많이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자연이 정복의 대상이 아니고 더불어 살거나 체념하는 종교관의 발현인 셈이다.

일본 주택의 또 하나의 특징은 개방적이고 융통성이 풍부한 점이다. 칸막이가 특별히 없고 공간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 따라서 각방의 독립성이 약하고 프라이버시가 존중되지 않는 점도 있으며 이것이 일본인에게 개인주의가 발달하지 않는 하나의 요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서양은 부부를 가정의 핵으로 하는데 비해서 일본은 가부장이나 부모·자식관계를 축으로 하는 주택구조이다. 또한 주택은 외양과 내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외양을 중시하는 편이다. 현관을 멋지게 꾸민다든가 보통 사용하지 않는 객실에 돈을 많이 들인다든가 하는 것은 바로 그런 발상이다. 봉건사회가 오래 지속되면서 주택은 신분이나 격식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현관은 녹봉의 수준을 나타냈고 높은 사람을 초청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응접실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일본이 서양화되면서부터는 응접실을 서양식으로 꾸미는 것이 유행하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서 가장 희생양이 되었던 것은 침실이나 부엌이었다. 돈을 들인 외양의 공간과 희생이 되었던 내부의 공간을 접합시킨 것이 일본의 주택인 것이다.


(2) 의복문화



일본 전통의복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는 기모노는 일본 고대 이래의 의복을 총칭하는 표현이다. 이는 동시에 서양의복에 대한 일본의 전통의상이라는 의미이며, ‘와후쿠라고도 한다. 기모노는 길고 느슨한 전통적 겉옷에 대한 현대적 호칭이고 역사적으로는 고소데라고 불렸다.

또한, 일본은 기모노와 외형은 비슷하지만 아주 간소화되어 입고 벗기 간편한 의상이 유카타를 즐겨 입는다. ‘유카타는 원래 홑옷이라는 의미로 헤이안시대에 목욕 시 혼탕문화였기에 알몸을 가리기 위해 걸친 얇은 옷을 걸쳤으며 목욕 후 목욕 가운 형식으로도 사용하였다. 일본 의복의 역사는 주로 이 고소데의 변천과 외국으로부터 전해진 의복의 스타일과 옷감에 대한 일본화의 역사라 할 수 있다.


(3) 음식문화

일본의 뚜렷한 사계절의 변화는 식생활에 그대로 반영된다. 계절의 맛을 살려 계절의 재료를 사용한 음식을 최고의 요리로 본다.

일본인은 쌀을 주식으로 하며 미소시루와 같은 국물음식과 쓰게모노의 절임류의 반찬을 즐겨먹는다. 1인용 개인냄비에서 직접 음식 조리해 먹을 수 있게 고체연료를 사용하며, 기리담보, 베이컨, 구와야기, 린을 즐긴다. 린과 구와야기는 달궈진 철판위에 야채와 고기, 해산물을 엊어 구워먹는 철판구이 음식이다. 국물류를 마실 때 수저 대신 그릇을 들고 젓가락으로 저어 조금씩 마신다.

전체적으로 많은 양념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형태를 보존하는 조리 문화를 가지고 있고 신선한 어패류가 풍부해 고기류보다는 생선류의 이용이 많은 편이며, 날로 먹는 사시미(생선회)를 비롯하여 튀김의 재료도 신선도를 대단히 중요시한다.

오세치()라는 말은 원래 오섹쿠가 변화한 것으로 일본의 5대 명절때에 신전에 바치는 요리를 총칭하는 말이었다. 현재는 정월에 먹는 요리를 지칭하여 오세치라 하는데, 특히 찬합에 담긴 정월 요리를 가리켜 오세치, 혹은 오세치 료오리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양력 11일부터 3일까지 가족들이 모여 성대하게 신년을 축하하며 기념한다. 이 날을 통해서 새로운 마음으로 신을 맞이하고 사람을 맞이하는 것이다. 우선 신을 맞이하기 위해서 섣달 그믐에는 대청소를 하고 집안을 말끔히 청소하는 한편 문밖에는 카도마츠를 설치하는 등 분주하다.

특히 설 기간 중에는 쌀로 밥을 짓거나 특별히 요리를 하지 않고 미리 만든 특별 음식인 오세치 요리를 먹는다. 신이 내방하는 기간 중에는 취사를 하는 등의 소음이나 냄새를 풍기지 않는 등 경건하게 보내는 풍습이 있기 때문이다. 이 오세치 요리는 국물이 없으며 쉬거나 쉽게 상하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3일 동안에 손님이 방문하면 찬합에 이미 만들어진 요리를 차려내기만 하면 되고 명절 내내 취사를 하는 등의 일이 없기 때문에 여성들은 그 기간 동안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셈이다. 하지만 섣달그믐에는 요리 만들랴, 대청소하랴, 너무나도 바쁘게 보내는 나머지 요통으로 고생을 하는 여성도 많다.

이 오세치 요리의 시작은 에도 시대 후반으로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 시대에 한창 건강한 서민문화가 꽃을 피웠는데 이 서민문화의 활기찬 멋과 유머에 찬 풍류가 고스란히 오세치 요리로 농축되어 있어 당시 일본인의 사상이나 염원을 오세치를 통해서 읽어낼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고기를 많이 써서 볼륨을 다양하게 하거나 건강을 생각해서 야채를 늘리는 등의 갖가지 개성을 살린 다양한 오세치 버전이 등장하였으며 현재도 가정별로 진화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연말의 바쁜 가운데에서 음식을 만드는 향기가 집안을 진동하는 때가 되면 마음이 들뜨고 거기서 나오는 향기에서 느끼는 향수는 변함이 없다.

 

(4) 기타

일본은 내각 책임제이며 왕이 존재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종교는 헌법 제3장 제20조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 국교는 존재하지 않지만 신도와 불교가 대다수를 차지하며 기독교는 1%에 해당된다. 결혼식은 교회나 성당에서 치르고 장례식은 불교식을 따르고 있다. ,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이며 공공장소에서의 질서를 지키며 약속 시간에 대한 개념이 철저하다.

하쯔모데는 일 년 중 가장 처음으로 신사 참배하는 것을 의미하며 신사마다 자신의 독특한 전공영역을 가지고 있어 소원에 따라 찾아가는 신사도 다르다. 신사에 찾아간 사람들은 오미쿠지로 자신의 운세를 점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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