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개혁협의회



1. 아시아

◑ 일본 ◑

결납, 결납식, 결혼식 이렇게 3단계의 과정을 거쳐 결혼이 이루어진다.

1. 결납식: 양가가 첫대면하는 자리로, 신부집에서 이루어진다. 신부는 기모노를 신랑은 양복(예복)을 입는다. 나오코도(타인)가 참가하는데, 이는 일종의 증인 역할을 한다.

2. 결납(結納): 신랑이 신부될 여자에게 보내는 결혼의 증표임과 동시에 신부를 지금까지 길러 준 양친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포함된 것으로 일명 납채라고도 한다. 결납에는 띠를 만드는 천인 "오비지" 평상복을 만드는 옷감인 "코소데지"등 결혼 준비에 필요한 물품과 술과 안주를 준비하고 물품들에 대한 목록을 써 보낸다.

3. 결혼식: 신전식, 불전식, 기독교식, 인전식

1) 신전 결혼식
가장 많이 행해지고 있는 결혼식의 형태로, 명치 33년 대정천황의 성혼을 기념하여 시작되었다. 3,3,9도라 하여 신랑신부가 잔을 아홉 번 돌려가며 술을 마시는 "합환주"의식이 따른다.
- 합환주 의식: 종족보존과 자손번창을 기원하는 의미에서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온 의식이다. 암수 한쌍의 나비가 정을 주고 받아 드디어 누에고치를 만든다는 것을 상징한다. 식 진행을 보조하는 두 사람이 세 개의 술잔과 암수 한쌍의 종이나비가 붙여진 술병을 신랑 앞에 가져오면 신랑은 왼손으로 첫잔을 받아 오른손으로 마주 잡고 세 번에 나누어 마신 다음 제녀에게 잔을 돌려준다. 제녀는 이 잔을 신부 앞으로 가져가서 술을 따르면 신부도 역시 왼손으로 잔을 받아 오른손 마주잡고 세 번에 나눠 마신 후 제녀에게 잔을 돌려준다. 이같이 해서 두번째 잔은 신부가 먼저 받고 세번째 잔은 신랑이 먼저 받는 식으로 아홉 번 돌려가며 마시는데 이 의식은 불전식에서도 행해진다.

2) 불전 결혼식
주로 사원에서 행해지나 경우에 따라서는 승려를 초대하여 가정 내에 있는 불전에서 행해지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전생에 부부의 연을 맺는 남녀가 부처님의 인도로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부처님 앞에 결혼을 보고하고 감사드리며 부부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승려가 성혼선언문과 같은 경백문을 낭독한 다음 신랑신부에게 염주를 수여하고, 이어서 승려의 주례사와 중매인의 서약서 낭독이 있은 후 신랑 신부가 분향을 하고 맹세의 뜻으로 3,3,9도의 술 음복을 한다.

3) 기독교 결혼식
신랑신부 모두 크리스천이어야만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할 수 있다. 다른 형태의 결혼식에서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식 결혼식에서도 중매인 부부가 시중을 들어 주지만 중매인이 신자가 아닌 경우에는 따로 신자인 증인을 세우며 중매인은 피로연 때만 그 역할을 수행한다.

◑ 요르단 ◑

두세 명의 친척 여자들과 함께 처녀의 부모님을 방문해서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고 결혼을 제안한다. 약혼 기간 동안 예비 신랑신부가 함께 다니는 것이 허용되지만 그 옆에는 항상 신부 측 남자들 몇 명을 동반해야 가능하다. 1.결혼 3일 전부터 시작돼 3일 이상 계속된다.
2. 혼식날에는 먼저 법정에서의 공식적인 결혼 등록 절차를 마치고 결혼 파티를 연다.
3.이 손님들에게 식사 대접하고 손님들이 신부를 데리러 간다.
4.집에 도착한 신랑 측 무리 중에 연장자나 여자가 나서서 신부의 집임을 확인하고는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5.신부가 삼촌과 오빠에게 이끌려 신랑 측에 인도되고 신부 어머니와 숙모들을 차에 태우고 신랑 집으로 출발하게 되는데 이들 행렬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노래가 계속된다. 신부의 어머니는 그날 밤 신랑의 집에 머무르며 신부가 처녀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데 이것은 요르단의 결혼 관습 중 매우 중요하고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 사우디아라비아 ◑

사우디 헌법은 한 남자가 네 명의 아내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4조 3항에 따라 두 가지 조건, 즉 고아들은 친자식처럼 보살펴줄 수 있으며 네 부인을 편애하지 않고 공평하게 사랑할 수 있다면 '일부사처'가 허용된다.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미망인 구제 및 대를 잇기 위한 방편으로도 허용되지만 3조 129항에서든 정신적으로나 성적, 물리적 등 모든 일에서 공정해야 한다는 조건이 제시되고 있다.
일부사처제의 배경으로 이슬람이 아라비아 반도와 사우디 주변 국가들로 전파돼가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전쟁을 치렀고 전쟁으로 수많은 남성들이 희생됨으로써 남자가 크게 부족했던 상황을 들 수 있다. 시행령에서 일부일처가 적용됐던 이라크에서는 다시 일부사처로 복귀했다. 인구는 곧 국력이라고 강조하면서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은 국력을 허약하게 만드는 행위라고 강조했던 예언자 무하마드의 가르침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남편은 각 부인 소유의 독립가옥을 마련해줘야 하고 부인마다 낮시간과 밤시간을 균등하게 분배해야 하며 아침이 되면 각 부인을 찾아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혼소송의 원인이 될 수 있다.
4조 3항에 해당되지 않고 3조 129항을 지킬 수 없을 경우에는 반드시일부일처가 돼야 한다고 헌법은 규정하고 있다. 한편 일처다부제는 허용되지 않고 있다. 여자의 천성으로 보아 한 여성이 동시에 여러 남자와 결혼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식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식별하지 어렵기 때문이라는 게 현지 법학자들의 해석이다.
자유연애는 큰 죄로 명시돼 있다. 미혼 남녀가 정을 통했을 경우 남녀 각자에게 1백대의 태형이 가해지며 남자는 해외추방령이 추가된다.
기혼 남녀간의 간통은 남녀를 막론하고 공개투석에 의한 사형을 받는다.

◑ 인도 ◑

인도에서는 결혼한 지 사흘째 되는 날 '그라브하 람바사'라 불리는 임신을 위한 의식을 치른 다음에야 부부가 처음으로 성관계를 맺는 것이 오랜 전통이다. 이로써 모태에 들기 전 한 개인의 정화 의식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배우자로서의 권리를 하루빨리 즐기려 하기 때문에 사흘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또한 인도인들은 아들을 얻는 것을 좋아하며 딸을 낳으면 불행으로 여긴다. 딸을 시집 보낼 때 상당한 지참금을 신랑측에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커다란 불이익을 입기 때문이다. 반면 종교적인 우선권을 갖고 있는 아들이 장례 의식을 수행해야만 부모의 영혼이 편안하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아들선호 사상이 매우 강하다.

◑ 파키스탄 ◑

파키스탄에서는 민족과 언어,지역에 따라 결혼문화도 각기 다르다. 그러나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이기 때문에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은 '니카' 라는 이슬람 사원에서 '이맘' 이라는 사제에게 고하고 신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이때 니카에 가기 전 반드시 부모의 허락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신족 (族)이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펀자브나 신드지방에서는 결혼전에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한 젊은이들은 법원에서 결혼인정을 받을 수 없다. 법원에 신고조차 않고 결혼을 하면 신부의 부모는 남자를 붙잡아 합법적으로 태형에 처할 수 있다. 이후 경찰에 인계하면 20년 가량의 징역형을 받는다.(1999.1)

◑ 말레이시아 ◑

결혼식은 대개 약혼한 지 1년이나 2년 후에 하는 것이 통례이다. 이는 예비 신랑신부에게 새로운 삶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한 것으로 이 기간 동안 신랑은 신부가 혼수감을 준비할 수 있는 돈을 매달 보내 주게 된다.
약혼식에는 신랑 신부가 반지를 교환하며 신랑은 신부를 데려 오는 값으로 신부의 부모에게 결혼선물을 한다. 결혼선물은 신부에 대한 부모의 책임과 의무가 신랑에게 옮겨진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신랑이 가장권을 가지며 아이가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 된다. 또 다른 의미로는 신부의 부모가 신부를 양육하는데 들인 모든 희생에 대해 신랑이 이를 보답하는 것이기도 한다.
결혼식에서는 신랑과 신부가 함께 결혼증명서에 서명을 하고, 신랑이 지참금인 마스 가윈을 신부에게 지불한다. 그리고 신부의 손을 잡으며 인사하는 살람 의식을 행한 한 뒤, 부모와 친척들에게 축복을 받는다. 이를 베르산딩이라고 한다.

◑ 중국 타이족 ◑

타이족은 30만 명 정도로 중국 서남쪽 변방에 위치한 운남성의 최남단 시수앙반나 지역의 라얀마, 라오스 접경 지역에 살고 있다. 우리 나라에도 잘 알려진 '보이다'가 특산물인 시수앙반나에 도착하면 여태까지 보아온 후질구레한 중국 사람들의 복장과 달리 붉은 색, 푸른색, 노란색 등의 빛나는 화려한 원색 옷을 입은 처녀들의 아름다운 자태에 눈이 부실 지경이다. 바로 타이족 아가씨들이다. 시수앙반나의 여러 소수 민족 중 타이족은 삼분의 일을 차지하며, 그들만이 유일하게 예로부터 문자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수준 높은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시수앙반나는 타이족의 자치주로 공식 인정을 밭았다. 타이족들은 옛부터 여기에 그들의 왕국을 세웠으며 일부는 약 천 년 전부터 태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나라라 세웠다. 현재 태국의 문자도 타이족의 문자가 그 원형을 이룬다. '타이'라는 말은 타이족 언어로 '자유의 나라'라는 뜻이다.
타이족은 결혼을 빨리하는 편이어서 여자의 경우 18세 정도에 시집을 간다. 20세가 되면 노처녀 신세가 되어 혼사도 잘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은 구애 방법이 재미있는데, 총각이 조용히 찾아와 처녀가 있는 방바닥을 밑에서 두드린다. 물론 옆방에서 자는 부모들이 이 소리를 못들을 리가 없지만 이 소리를 들음으로 해서 내 딸을 좋아하는 남자가 있구나 해서 도리어 안심한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곳의 처녀는 일단 남자와 동거를 하여 아이를 낳아야만 그 생산 능력의 입증되어 결혼을 할 수 있었는데 '처녀가 아이를 업고 시집간다.'고 중국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하였다.

◑ 중국 사니족 ◑

중국 중경에서 콘밍을 거쳐 미얀마까지 이어지는 협궤는 '비취길'로 불리워진다. 이 길을 따라 가면 돌의 밀림으로 유명한 석림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이 곳에 화려한 전통 복장과 아름답기로 유명한 소수 민족 사니족이 살고 있다.
음력 6월에 콘밍 부근의 이족들이 석림에 몰려들어 소싸움, 장대 타기등 대규모 축제를 벌이는데 특히 밤의 횃불 축제는 장관이다. 이 축제 때는 사니족 처녀 총각들에게 사랑을 구할 절호의 기회다. 처녀 총각들은 풀피리를 불어 서로를 유혹하는데, 남자가 처녀의 손등을 은근히 만지면 사랑한다는 표시이며 처녀가 허락을 하면 남자는 3년 동안 처녀의 집에서 막일을 해주고 나서야 결혼을 허락 받을 수 있다. 일단 결혼을 하고 나면 사니족 여성들은 정성을 다하여 남편을 대한다.

◑ 중국 하니족 ◑

하니족은 중국 운남성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소수 민족으로 약 백이십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예로부터 산 위에 살기 때문에 집을 낮고 작게 짓는다. 아들이 결혼을 하면 큰집 옆에 따로 작은 집을 지어 잠을 자기 때문에 작은 집이 몇 개인가를 보면 저 집에 아들이 몇 명인가를 알 수 있다. 여자의 복장은 매우 이색적으로 검은 바탕의 옷에 은으로 만든 목걸이, 팔지, 동전, 구슬 등 각종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달아 치장하고 멋을 낸다. 모자에도 역시 구슬을 층층이 둘러 장식하는데 처녀의 모자에는 깃이 없고 결혼하고 나면 깃이 뾰족한 모자를 쓴다.
하니족은 남자를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집안을 출입할 때도 남자는 앞 문을 여자는 뒷문을 이용한다. 밤에 잘 때에도 부부도 같이 자는 법이 없고 남자는 남자 방에 여자는 여자 방에 나뉘어 잔다. 집안에는 불이 두 개 있는데 이 또한 남녀 구분이 있어 1개는 여자가 밥을 할 때 사용하고, 1개는 남자가 물을 끓이거나 사냥감을 요리 할 때 사용한다. 남녀 간에 지위에는 차별을 두지만 농사일 만은 나누어서 평등하게 한다.

◑ 베트남 서당족 ◑

서당족은 베트남 콘툼(호수의 도시) 주변에 살고 있다. 콘툼 주변은 쭈모리산에서 흘러내린 강들이 모인 넓은 호수들이 산재해 있으며 적당한 기온의 상쾌한 날씨와 아름다운 전원풍경으로 더 없이 살기 좋은 고장이다. 서당족은 이 콘툼 지역을 중심으로 약 1만 1천명이 살고 있다. 이들은 베트남 중부 소수 민족 중에서 가장 용맹스럽기로 알려져 있으며,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하여 용맹을 자랑하였다. 서당족의 무사들이 사용하는 활과 창은 매우 위력적이어서 주위 민족들이 두려워한다. 옛날부터 다른 민족들이 농사를 주업으로 살아 왔으나 서당족은 사냥을 주로 하며 살아 왔다. 사냥감이 줄어들고 쭈모리산이 야생 동물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사냥이 금지되자 지금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서당족은 음식과 생활 그리고 생산과 관련되는 많은 정령을 믿고 있으며 사냥이나 농사를 앞두고 행해지는 다양한 의식들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마을 족장은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며 마을의 공공적인 모든 일을 주관한다. 이들에게는 가족 이름 즉 성이 없이 남녀를 구별하는 간단한 이름만 존재한다. 결혼은 자유롭게 짝을 찾아 맺어지며, 결혼 후 부부는 공평하게 몇 년 동안 서로의 집에서 번갈아 가며 산다.
아마 서당족은 이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민족일 것이다. 이들은 마을 촌장 외에는 계급도 없으며, 부계로든 모계로든 가족의 계통에 따른 혈통에 대한 관념도 없다.
남녀도 평등하여 건장한 사나이들이 아기를 업고 다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매년 해마다 열리는 물소 죽이는 축제에서는 남녀가 어울려 노래와 춤을 즐긴다.

◑ 베트남 지아라이족 ◑

베트남의 자라이족은 25만 명 정도이며 플레이쿠 등지의 중부 산지에서 주로 벼농사를 지어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역사는 문자가 없어 확실히 알 수 없어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민족 언어와 50% 정도가 비슷하여 의사 소통이 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달력이 없는 자라이족은 약 10월에서 12월경에 '쿡키'라는 야생 해바라기가 만발하면 축제를 벌인다. 전설에 의하면 '부낭'이란 부유한 집 처녀가 가난한 다른 부족에 시집을 갔는데 고생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을 하였는데, 시신을 화장하여 들판에 뿌렸는데 야생 해바라기라 피어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일하자는 뜻으로 축제를 벌인다는 것이었다. 축제가 끝나면 농기가 시작된다.
자라이족 처녀는 15세 정도가 되면 축제 기간 중에 자유롭게 미래의 남편을 선택한다. 신부 측에서는 신랑의 가족에게 지참금으로 돼지 10마리를 주어야 한다. 결혼식은 닭을 잡아 심장을 네 조각 내어 돼지 꼬리털로 주둥이를 감싼 항아리에 담아 동서남북 네 방향에 두고, 양가 부모 앞에서 서로 마주 보며 맹세를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후에 물소를 잡아 동네 사람들과 축제를 한다. 만일 외부인이 들어와 자라이족 처녀를 겁탈할 경우 평생을 강제로 그 집에서 살아야만 한다.
자라이족은 아직도 모계 사회 전통을 유지하기 때문에 아들보다 딸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가족의 주권은 어머니에게 있으며 아이들은 어머니 이름을 따른다. 자라이족은 사람이 죽으면 마을 옆에 있는 가족묘에 안장한다. 가족묘 속에는 보통 수십 개의 뼈가 담긴 항아리가 놓여 있는데, 이 항아리는 골동품적 가치가 높아 근래에 와서 도난 당하는 수가 빈번해지고 있다고 한다. 무덤 주위에는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된 여러 가지 목각 조각상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사자의 생전의 모습과 죽음을 표현한 것이다. 결혼 첫날밤에 죽은 남녀를 표현하여 성교 장면을 조각한 것,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삶을 마친 여인을 표현하는 생각하는 여인상, 전쟁 중에 죽은 사람을 군인 모습 그대로 조각한 것, 임신 중에 죽은 여인을 표현한 조각 등등 수 없이 나열대어 있다.

◑ 베트남 무농족 ◑

무농족은 베트남의 락호수(Lak lake) 주변에 살고 있다. 락호수에 대한 무농족의 전설이 있다. 옛날 불의 신과 물의 신이 전쟁을 하였다. 치열한 전투 후 물의 신이 패배하여 둥근 바위돌 속에 숨어 버렸다. 그러자 가뭄이 닥쳐 몇 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고 나무와 동물들이 죽어 갔다. 마을 사람들은 물을 갈망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한 가난한 청년이 물을 찾아 나섰다. 며칠 동안 여행을 한 후 지친 나머지 바위돌에 앉아 식사를 하려다가 바위의 깊은 틈 속에서 작은 뱀장어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뱀장어를 잡아 솥에 넣었는데 입에서 물이 방울 방울 떨어지는 것을 보고 물의 신이 변신한 것을 눈치 채었다. 뱀장어를 놓아주고 몰래 따라가니 갑자기 눈앞에 거대한 호수가 나타났다. 그날부터 락호수가 있게 되었다.
무농족은 모계 사회 전통을 가진다. 남자가 청혼을 하고 여자가 결정을 하게 되면 신부의 삼촌이 신랑집으로 찾아가 결혼 날짜를 잡는다. 결혼식은 이틀 동안 행해진다. 첫날은 남편 집에서 잔치를 하는데, 신부가 남편의 어머니에게 담요, 놋쇠 그릇, 팔찌를 선물한다. 담요는 남편 될 사람이 아기일 적에 담요에 싸서 길러준 것에 대한 보답이고, 놋쇠 그릇은 목욕시켜 기른 것에 대한 보답이며, 8개의 팔찌는 신랑이 성인이 될 동안 8번 기원한 것에 대한 보답이다. 이에 신랑은 신부 가족에게 물소와 돼지 등을 지참금으로 내놓는다. 둘째 날은 신부집에서 남편 가족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한다. 결혼 후 신부는 신랑집에서 1년간 머문 뒤, 신랑을 맞아 집에서 되돌아와 평생을 보낸다.
무농족은 많은 아이들을 가지기를 좋아하는데, 아이가 태어나고 1년후 물건을 만지게 하여 그것으로 이름을 정한다. 이때부터 아버지는 본래의 이름이 없어지고 '누구누구 아버지'라고만 불리운다.
장례는 7일 동안 이어지며 매우 성대히 치러지는데, 그 동안 마을 사람들은 일하지 않고 먹고 마시기만 한다. 가난한 사람은 그 비용을 마련하기 힘들어 몇 년식준비하여 장례식을 치러기도 한다.

◑ 베트남 에데족 ◑

베트남 반돈 지방에 살고 있는 에데족은 손님을 접대하기를 좋아하고 음악을 즐기는 민족이다. 에데족의 집은 각주 위에 지어지며 집의 내부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주요 부분인 '가흐(gah)'라 불리우는 부분은 손님을 접대하는 방으로, 방 중앙에는 항상 접대용 술 항아리 놓여 있다. '오크(ok)'라 불리우는 집의 나머지 부분은 부엌, 잠자는 방 등으로 나뉘어져 있어 가족들이 생활을 한다.
손님방에는 여러 가지 악기와 함께 큰북이 놓여 있다. 큰북의 한쪽은 암물소 가죽으로 만들며 다른 한쪽은 숫물소 가죽으로 만들어지는데 사용 용도가 다르다. 예를 들면 결혼식에는 암소가죽 쪽을 두드리며 장례식과 같은 좋지 않은 일에는 숫물소 가죽으로 만든 쪽을 때린다.
에데족은 모계 사회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 결혼을 하면 남자가 여자 집으로 가서 생활하며 모든 재산은 딸에게로 상속된다. 무농족은 결혼한 부부가 서로 싫어지면 이혼을 하며 배우자가 죽으면 모든 결혼 관계가 청산된다. 그러나 에데족은 부인이 죽게 되면 그 부인의 동생과 다시 결혼 생활이 이어지며, 남편이 여자가 싫다고 해도 결혼 지참금을 물어 주어야만 이혼이 성립된다.

◑ 라오스 타이루우족 ◑

타이루우족은 타이족이라 불리는 민족의 일부이다. 원래 중국의 운남 지방에 살다가, 지금은 중국 운남성 서남부, 미얀마 북동부, 태국이나 라오스 북부 지방에 흩어져 살고 있는 비교적 큰 민족이다.
타이루우족 처녀와 총각은 축제 기간 동안 자유로이 성관계를 맺으며, 결혼하면 신랑은 신부의 집으로 들어가서 살아야 한다.

◑ 라오스 이코르족 ◑

이코르족(아카족)은 베트남, 미얀마, 태국, 라오스 등의 국경 지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산악 민족으로 원래 중국 운남성의 하니족과 같은 민족이다. 대부분의 아카족은 오지의 산비탈에 10-30가구씩 부락을 이루며 무리지어 산다. 라오스에는 약2만명의 아카족이 살고 있는데, 그 지역적 고립성으로 인해 그들의 전통을 전혀 훼손 당하지 않고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아카족은 특이한 의상으로 인해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구슬로 겹겹이 화려하게 장식한 모자에서부터 온몸을 은으로 만든 온갖 장신구로 주렁주렁 매달아 치장한다. 아카족 여자들은 일할 때나 잠잘 때나 이 무거운 구슬 모자를 좀체로 벗지 않는데, 발가벗은 어린아이 조차도 모자 만은 쓰고 뛰어 논다. 남자들도 왕관 모양으로 화려한 구슬 모자를 쓰나 평상시에는 벗고 있을 때가 많다.
아카족은 각주 위에 집을 짓는데 주거 공간 밑은 가축을 기르는데 주로 사용한다. 집내부는 중앙을 두 갈래로 나누어 남녀의 공간을 엄격히 구분할뿐더러 남녀가 사용하는 출입구도 따로 만든다. 사랑을 나눌 때조차도 일이 끝난 후에는 즉시 헤어진다. 새해 축제가 되면 아카족 청춘 남녀들은 숲속에서 자유로히 성생활을 즐긴다. 처녀가 임신을 하게 되면 아기의 아빠라고 짐작되는 총각에게 찾아가 청혼을 한다. 결혼 후에는 일부일처제를 지키며 서로를 신뢰한다.
아카족 여인들은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을 경우 두 젓가슴을 드러내놓고 다닌다. 결혼은 했으나 아이가 없으면 한쪽 가슴만 내놓고 처녀는 두 가슴을 모두 가린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 서민들 풍습에 아들을 출산한 여자가 가슴을 자랑스럽게 내놓고 다녔다고 한다.

◑ 라오스 흐몽족 ◑

흐몽족의 혼례는 소박하지만 경건하다. 결혼식 당일 낮까지 일상이 계속되다 어스름해지면 집안에 저녁상이 준비된다. 잔치 상이래야 큰 사발에 밥 한 사발과 특별히 준비한 닭을 삶은 국이 전부. 하객은 보통 주인 옆에 앉은 새신랑의 장인과 주례에 해당하는 이웃 어른 1명 정도 참석하다. 모두가 자리를 잡고 앉으면, 이웃어른이 일어서서 주인에게 두 손을 모어고 축하의 인사를 한다. 주인도 역시 두 손을 모아 진지하게 답례를 한다. 이어서 신랑이 들어와 바닥에 큰절을 몇 번 한다. 주인은 손님들에게 식사를 권한다.
식사가 끝나면 신랑은 새옷으로 갈아입은 신부와 함께 동네 어른을 따라 나섰다. 신부의 집으로 가는 것이다. 이때 신랑 들러리가 바구니를 매고 따라 나선다. 바구니 속에는 삶은 닭 한 마리와 우산을 넣는다. 이 닭은 신부집으로 가는 도중 먹는데, 옛날 신부의 집까지 거리가 멀어 가는 도중에 식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이러한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신부의 집에 도착하면 이웃어른은 곡식을 한 봉지 들고 와 한줌 씩 나누어주고, 이어 신랑이 장인에게 큰절을 올리면 모든 결혼식은 끝난다.
너무나 소박한 결혼식이지만, 모두 경건하고 예의를 갖추는 모습으로 참여한다. 결혼식이 끝나면 신부는 아기를 업고 신랑집으로 돌아간다. 몽족은 결혼전에 조건부 동거를 하였다가 아들을 낳아야 결혼식을 하는 것이다. 만약 오랫동안 동거를 했어도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혼담은 없었던 것이 된다. 이 순간부터 처녀 총각은 각자 다른 상대를 골라 다시 동거를 시작해야 한다. 만약 계속해서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몽족 여성은 홀로 살 수 밖에 없다.

◑ 인도 라자스탄 사람들 ◑

라자스탄에서는 결혼식을 앞둔 신부에게 동네 여인들이 기도의 노래를 전해준다. 붉은색, 노란색, 파란색 등의 화려한 사리를 걸친 여인들이 다양한 악기를 들고 나와 한바탕 춤판이 벌어진다. 이것이 이방인의 눈에는 즐거운 파티를 연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 내용은 종교(힌두교)적인 기도와 신부에 대한 기원을 하는 것이라 한다. 이들은 행사가 끝나면 붉은 막대를 앞세우고 무리 지어 신부의 집으로 향한다.
라자스탄의 여인들은 대략 20세 전후가 되면 신랑감을 물색하게 되는데, 결혼식은 여자집에서 흰두교 성직자에 해당하는 브라만을 모시고 신에게 기도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어서 양가 부모가 충고,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신부는 이마에 신두르라 부르는 붉은 점을 붙인다.
라자스탄의 여인들은 많은 지참금을 가지고 시집을 와야하며, 일상 생활에서는 여인들을 구속하는 8계를 지켜야 한다. 그 예로 여인들은 결혼할 때와 죽어 시신이 나갈 때만이 집밖으로 나갈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계층에 의해 신분을 구별하는 흰두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 일처다부제의 토다족 ◑

남인도 지방의 토다족 사회에서는 한 여자가 한 남자와 결혼을 하면 그 여자는 결혼한 남자의 동생들의 마누라 구실도 해야 한다. 이것을 형제 다부혼(Fraternal Polyandry)이라고 하는데, 한 남자와 결혼한 한 여자가 여러 남자 형제들과 성 접촉을 할 수 잇는 복수성 관계(Polykoity)의 경우다.
이렇게 하여 여자가 임신을 하면 맏형은 자식의 아버지라는 표식으로 여자에게 화살을 기증한다. 이런 의식에 따라 태어난 아이의 아버지가 맏형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형제들도 화살을 기증하는 절차를 밟아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 있다.
일처다부제는 어느 지역 부족사회에서 남자 수가 많고 여자 수가 적을 때 생긴다. 이런 인구상의 남녀 불균형은 여자 아이 쌍둥이를 낳을 때 이들은 죽여버리는 관행과 연관된다고도
본다. 토다족은 여아 쌍둥이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미신적인 관례를 지키고 있다.

◑ 태국 카렌족 ◑

카렌족은 그들이 조상이 박에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박덩굴에 열린 여러개의 박들에서 모두 사람이 나왔는데 이중 카렌족이 조상이 가장 먼저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민족들은 모두 그들의 동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부심 때문인지 카렌족들은 매우 점잖고 정직하며 순박하다. 카렌족 중에는 무거운 링을 평생 목에 감아 목을 길게 늘인 기린족으로 유명한 빠다웅 종족과 귀를 크게 늘어뜨린 종족이 있다. 귀에서 동그리한 금속 귀거리를 빼니 귀에 거의 주먹이 들어갈 정도의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처음에는 작은 구멍이었겠지만 계속해서 큰 귀걸이로 바꾸어 귀가 늘어난 때문이다.
다른 소수민족과 달리 카렌족은 성적으로 매우 보수적이다. 혼전 성교는 철저히 금지되어 있으며, 나이든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총각 처녀가 연애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남자가 처녀집을 방문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결혼할 나이가 된 남자들은 모심기나 추수할 때 아니면 마을 행사 때 처녀들의 얼굴을 열심히 익혀야 한다. 그러나 처녀는 정숙함을 지키기 위해서 절대로 좋아한다고 표시하거나 음식을 건네주는 일은 없다. 총각은 노래로 처녀를 불러내거나 처녀가 자고 있는 마루 바닥 밑을 기어가서 마룻구멍으로 손가락을 넣어 처녀를 깨워야 한다. 처녀는 총각이 마음에 들면 가족들 몰래 나가서 청혼을 받아들인다.
카렌족이 결혼식은 3일 동안 계속되는데 먼저 신랑이 친구들과 노래와 춤을 추면서 신부집에 간다. 그들이 도착하면 신부의 어머니는 총각의 발등에 물을 뿌려 잡귀를 제거한 후에 닭고기와 술을 나누어 먹고 잔치를 시작한다. 결혼 후 신랑은 최소한 2년 동안은 신부집에서 사는 것이 원칙이다. 그들은 한번 결혼하면 이혼하는 법이 없다.. 그리고 철저한 일부일처제로서 남편이 없는 과부들은 다시 결혼 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들은 간음을 하면 땅의 신을 분노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물소, 돼지와 같은 큰 동물을 가해자 측이 바쳐야 한다. 그리고도 부족하여 마을에서 쫒겨나기 일쑤이다.

◑ 태국 흑몽족 ◑

몽족은 동부 아시아의 산족 유목민 중의 하나이다. 몽족이 시베리아나 몽골과 같은 추운 지역에서 왔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대체로 19세기경에 중국에서 태국으로 넘어 온 것으로 여겨진다. 태국내에는 백몽족과 흑몽족이 있다. 이들은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및 중국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태국에 있는 소수부족 중 2번째로 많은 부족으로 7만 명 정도가 난, 수코타이, 치앙마이, 페차분, 딱, 치앙라이, 메홍쏜 등에 분포되어 살고 있다.
몽족은 중국에서는 묘족이라 불리우며 천제 700만 명의 몽족 중의 500만 명 이상이 중국에 살고 있다. 그들은 중국에서 한족다음으로 발달된 문화와 세력을 가지고 있어 수 세기동안 중국 황실에 대항해 왔다. 영화 동방불패의 주인공들이 이들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몽족의 여자들의 생활은 아주 비참하다.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들에 가서 온종일 노예나 다름없이 일을 하고 밀림에 들어가 사냥을 하는 동안 남자들은 집에서 아편이나 피우거나 빈둥빈둥 놀고 있다. 여자들은 그렇게 평생을 고생하지만 몽족의 말에는 고맙다거나 위로해 주는 단어조차 없다.
몽족의 젊은이들은 성적으로 매우 자유스럽다. 처녀가 애기를 낳아도 하나도 부끄럽게 생각지도 않으며 주위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일도 없다. 비록 처녀라도 어린애가 있다는 것은 여자에게 있어서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다.
새해는 결혼 상대자를 구하는 십대들에게도 가장 좋은 기회가 된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늘어서 있는 반대편으로 일렬로 서서 앞뒤로 까만색의 베공을 주고받는데, 적당한 짝에게 공이 배달되면, 큰소리로 농담과 희롱의 말들을 건넨다. 그리고 마을의 처녀들이 보는 앞에서 마을 청년들이 한 나절 동안 춤을 추며 바우겐이라는 악기를 연주한다. 그러면 듣고 있던 처녀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의 악기에 목걸이나 팔찌를 걸어 준다. 어느 청년의 피리에는 여자애의 팔찌가 하나도 없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피리를 잘 부는 사내애의 피리에는 팔찌가 여러 처녀들로부터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수도 있다.
서로의 사랑이 확인되면 남자는 처녀에게 청혼을 한다. 여자가 결혼하면 남자의 부모님과 살게 되므로 남자의 부모가 지참금을 주어야 하며, 결혼식 날에도 남자 쪽에서 돼지를 잡아온다. 그리고 남자가 여자가정의 조상신을 모시게 할 것을 선서하게 한다. 예식 순서 중 식에 참석한 모든 친척에게 절을 하여 상견례를 하고, 오지 않은 친척에게라도 이름이 불리워지면 절을 하게 한다.
몽족은 일부다처제로 첩을 많이 두고 있는데 첩의 순서대로 어려운 일을 하게 되므로 본부인은 쉬운일을 하기 위해 오히려 첩두기를 장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몽족 마을에는 여러명의 아내를 거느린 남자를 흔하게 볼 수 있다.

◑ 티베트 인들의 결혼 관습 ◑

티베트에는 신기한 결혼 관습이 있다. 이곳에서는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려고 하는 남자는 한 사람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자 경험이 없는 여자는 쓸모가 없다고 여겼다. 그곳 사람들은, 남자 경험이 없는 여자는 신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부족의 여자들 중 남자 경험이 많은 여자를 선호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여행자가 이 지방을 지나가다가 텐트를 치고 묵어 가려고 하면 이웃 마을에 사는 이들이 20명에서 40명이나 되는 딸들을 이 텐트로 데리고 와서 제발 하룻밤 데리고 자 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그래서 여행객이 가장 마음에 드는 소녀를 택하면 나머지 소녀들은 완전히 풀이 죽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여행자들은 그곳에 머무는 동안에는 얼마든지 여인들을 골라서 데리고 즐길 수 있지만 여자가 아무리 마음에 든다고 해도 다른 지방으로 그 여인들을 데리고 갈 수는 없다. 남자들은 떠날 때가 되면 같이 지내던 여인에게 정표로 작은 목걸이 같은 것을 주어야 한다. 그러면 그 여자는 결혼할 때 이것을 내 보이며 자신도 연인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자랑할 수 있다.
이런 풍습 때문에 거의 모든 여자들은 20개가 넘는 장신구를 목에 걸고 다니며 자기가 많은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것을 여러 사람에게 과시한다. 그리고 가장 많은 장신구를 달고 다니는 여자는 가장 많은 존경을 받게 된다. 사람들은 또 그녀가 가장 훌륭한 아내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모두 부러워한다. 사람들은 그녀를 신이 가장 총애하는 여인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일단 결혼을 하여 아내가 되면 사람들은 그녀를 아주 소중히 대접해 준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지 그 여자와 스치기라도 하면 그것은 아주 큰 모욕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아주 조심해서 그런 행동을 삼간다.
이것이 티베트 인들의 결혼 관습이다. 이 나라는 열 여섯 살에서 스물네 살까지의 젊은이가 방문하기에 천국 같은 고장이다.

2. 유럽

◑ 영국 ◑

1. 의복

1) 신부: 하얀 웨딩드레스
드레스에는 색이 있는 코사지를 장식한다.
신부의 들러리(main)는 이색과 동일한 색의 드레스를 입는다.
그리고 Something old, something new, something borrowed, something blue'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즉, 웨딩드레스의 레이스가 새 것이면 베일은 어머니께 물려받은 것으로 웨딩 슈즈는 친구에게 빌린 것으로, 코사지는 푸른 색으로 한다는 것.
또한 신부의 들러리는 신부와 같은 부케를 들어 전체적인 분위기를 신부와 맞추어야 한다

2) 신랑: 연미복이 원칙.
신랑, 신랑의 들러리(best man), 신랑 신부의 아버지가 동일한 예복을 입는다.
이때, 모자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2. 결혼의식

1) 장소: 주로 교회나 성당

2) 피로연
신부의 아버지가 하객들에게 짤막한 인사말을 하며 결혼을 축하하는 축배를 리드한다.
하객들은 차려진 음식을 먹으며 새로 탄생한 신혼부부를 축복해준다.
식사 후 신랑의 가장 친한 친구가 신랑의 독신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신랑과 결혼을 하게끔 신부를 키워 준 신부 어머니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이어서 신랑은 하객들 앞에서 자신의 아내로 맞이한 신부의 아름다움에 대해 찬사를 보낸다.
몇몇 사람들의 연설이 끝난 후 신랑 신부가 함께 웨딩 케이크를 자른다.
하객들과 여흥을 즐기고 난 신랑 신부는 제일 먼저 연회장을 빠져 나와 신혼여행길에 오른다.

◑ 독일 ◑

1. 결혼을 위한 의식: 독일의 결혼식은 세 단계로 나뉘어 3일동안 진행된다.

- 첫번째 단계(포터 이벤트): 결혼식 전날에 열리는 파티.
이날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자신의 집에서 오래 된 접시를 몇 개 가져와 신혼부부의 집 앞에 던져 깨뜨린다. 이렇게 하는 것은 신혼부부에게 행운을 가져온다 믿는 풍습때문이다. 이 일이 끝나면 사람들은 파티장으로 가 댜양한 종류의 샐러드나 소시지, 케이크, 음료등을 먹으며 게임이나 춤같은 여흥을 즐긴다. 신랑신부는 이때 하객들이 가져온 선물을 공개하면서 멋진 선물과 참석해 준 것에 대하여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 두번째 단계
다음날 결혼 등록소에 가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다.
신랑신부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처음 알리는 행사로 세 단계중 두번째 단계에 해당된다.
신혼 부부의 가족들과 친척, 그리고 특별히 이들의 결혼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서명해야 하는 증인 몇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식이 진행한다. 종교인이 아닌 경우에는 결혼 등록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끝나지만 종교인일 경우에는 세번째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 세번째 단계
결혼등록소에서 결혼식을 마친 그날 오후나 그 다음날인 세째날에 치른다.

2. 의복

1) 신부 - 순결을 상징하는 흰색의 긴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하얀꽃이 달린 베일을 쓰고 양손에는 흰가방과 꽃다발을 든다.

2) 신랑 - 신랑은 검정색 양복이나 턱시도를 입는다.

3. 결혼식
신부 옆에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친척 어린아이들이 신랑신부가 행진할 때 뿌릴 꽃바구니를 들고 신부의 뒤를 따른다. 신랑은 신부가 성장을 하고 교회에 도착할 때까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들은 각기 꽃으로 장식한 차로 시내 드라이브를 즐기면서 지나가는 행인들로부터 축하를 받으며 교회에 도착한다. 교회에 도착해서 신부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식장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면 신랑은 신부 아버지가 신부를 데리고 앞으로 나올 때까지 정면에서 기다리고 잇다가 인계받는다. (이 절차는 이제 신부가 가족의 품에서 떠나 남편에게 맡겨진다는 것을 의미함. )
그런 다음 신랑신부는 결혼반지를 교환한다. 상대방의 이름이 새겨진 이 결혼 반지는 서로에게 소속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친구나 가족들이 나와 축가를 부르거나 음악을 연주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의식을 마친 다음 신랑신부는 교회문을 나선다. 이들이 교회문을 나설 때 친구들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쌀이나 페이퍼롤을 던지며 행운을 기원한다. 곧이어 신혼부부는 차를 타고 시내를 드라이브하는데, 길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 막 결혼했음을 알리기 위해 차 뒤에 깡통을 매달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도심을 달린다.

*** 일부이처제가 존재했던 독일 ***
17세기 중반 독일의 어느 지방에서는 「일부이처제」가 철저하게 시행된 적이 있다. 그것도 한 사람의 남자가 두 사람의 본처를 두고 그 두 여자들이 같은 방에서 함께 사는 형태였다.
세 사람간의 결혼은 비밀스럽게 그래서 이웃사람들에게 쉬쉬했던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 앞에서 협정을 맺고 당국으로부터 공인됨은 물론 권장되기까지 했다. 독일의 역사사회학자 에드와르트 푹스(Eduard Fuchs)는 『이는 그 당시 독일이 처해 있던 역사적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당시 독일은 30년 전쟁을 겪었다. 전쟁 전 독일인구는 1천6~7백만명을 헤아렸는데 전쟁이 끝난 1648년에는 4백만명밖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남자의 수는 여자 5명당 3명에 불과했다.
푹스는 『어느 시대이든 가장 중요한 자본은 인간, 즉 노동력』이라며 『이 시대에는 인간이라는 자본이 역사상 유례없이 부족했고 또 그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아이들을 생산하는 것이 가장 커다란 경제적 요구였다』고 설명했다. 「생식능력이 있는 한 많이 낳는 것이 모든 남자의 가장 고귀한 도덕적 의무」였다는 것이다.

3. 아프리카

◑ 케냐 마사이족 ◑

마사이족의 가장 큰 희망은 소의 숫자를 늘리는 것, 이를 위해 일손 즉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 그래서 다른 마사이족도 기타아프리카 원시부족처럼 일부다처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마사이족의 젊은 남자들은 대부분 방목을 위해 장기간 집에 돌아오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귀가하면 여러명의 처들이 기다린다. 그러나 마사이족에게 섹스는 쾌락을 대상이라기보다는 아이를 낳는 생산활동이다. 만약 한 남자가 체력 부족으로 여러명의 처 모두에게 생산활동을 할 수 없을 경우에는 가장 친한 동료에게 생산활동을 대행케 한다는 것이다. 다음 귀가 때에는 품앗이로 갚은 것이 마사이족 사회의 전통이다. 이 관행이 와전되어 [마누라 교환]이라는 풍습으로 알려졌다.

◑ 피그미족의 결혼풍습 ◑

열대우림에서 사냥과 채집으로 이동하며 살아가는 난쟁이 집단인 피그미족의 결혼풍습은 매우 진기하다. 즉 피그미족의 소녀들은 다른 부족보다 훨씬 조숙한 편이어서 보통10세 전후에 초조를 보고 사춘기를 맞는다. 여자의 결혼연령은 10세부터 시작되며 남자는 13세 전후에 결혼한다. 여자가 30세를 넘어서면 이들 사회에서는 노파로 취급된다. 결혼에 따르는 혼자(婚瓷)같은 것은 전혀 없다. 그들에게 결혼이란 엄숙한 의식인 동시에 겪어야 할 인생의 시련이라고 믿는다. 결혼식은 신랑과 신부가 서로의 허리띠를 풀어 교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신랑 신부는 신방으로 마련된 움막에 들어가서 두세 시간 동안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 시간에는 애무가 금지되어 있다.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뜻이 맞으면 마련된 신방에서 2~3일을 함께 지낸다. 이 기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다만 물 한 병으로 견뎌내야 한다. 물론 성 접촉은 금기다. 신랑 신부를 감시하던 마을 어른 두 사람이 이러한 절차가원만하게 잘 진행되었다고 인정하면 비로소 두사람은 부부로서의 첫날 밤을 가지도록 허용된다. 피그미족 가정은 되도록 많은 아기를 낳는 것이 이상적이다. 한 여자가 평균15~20명의 자녀를 출산한다. 임신 기간은 8개월 반이며 대부분 순산한다. 그러나 열악한 생활 조건 때문에 질병으로 인한 유아의 사망률이 대단히 높다. 그래서 피그미족은 다산에 비해 인구가 늘지 않고 오히려 감소되고 있다. 피그미족은 부부가 한 단위가 되어 조그마한 움막 초가에서 자녀들과 함께 산다. 이들은 몇몇 가족 단위가 모인 하나의 혈연 집단으로서 부계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어느 특정 지역에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약 2주간격으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이른바 밀림 속의 집시와 같은 존재다. 또한 이 집단에는 추장과 같은 지도자가 없다. 사냥은 남자가 맡고 채집은 여자가 담당한다.

◑ 부시족의 약혼과 결혼 ◑

아프리카의 남부에 있는 칼라 하리사막의 원주민 부시맨은 몇해전 한편의 영화로 세상에 소개 되어 우리의 귀에 익숙한 부족이다. 부시맨족은 사회에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구혼하는 방법이 기묘하다. 총각이 밤늦게 처녀가 있는 움막으로 다가가서 사냥에 쓰는 화살을 움막 안으로 꽂는다. 이때 처녀가 뜻이 있으면 그 화살을 움막안에서 뽑아서 하룻밤 보관한다. 뜻이 없으면 화살이 꽂히자마자 곧 밖으로 내던진다. 이렇게 하여 약혼이 성립되면 신랑 후보는 곧 잔치 때 쓸 짐승을 잡기 위해 사냥에 나선다. 한편 신부측의 모친은 신방을 꾸밀 움막을 새로 짓는다. 신랑이 사냥에서 돌아오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고 노래하며 축제를 즐긴다. 밤이 깊어 가면 신부가 새로 꾸민 신방 움막으로 들어가고 결혼실의 막이 내린다.
부시맨족 사회는 원칙적으로 일부일처제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세 명까지 아내를 거느릴 수 있다. 하지만 아기는 한 가정에 셋 이상 두지 않는 풍습이 있다. 만일 네 번째 아이가 태어나면 생매장하여 없애 버린다. 쌍둥이는 불길한 징조라고 하여 둘 다 죽인다. 이것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공통되는 관습으로 쌍둥이를 낳으면 둘 다 죽이거나 혹은 둘 중 하나를 죽인다.

◑ 워오라베족의 결혼축제 제론볼 ◑

아프리카 북부의 사하라 사막에서 널리 퍼져 거주하는 보로로계의 워오라베족 또한 결혼 풍습이 흥미롭다. 다른 부족과는 달리 여자는 결혼 전 까지 반드시 정절을 지켜야 하는 것이 이들의 전통이다. 소녀가 신랑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제론볼이라는 대축제 때다. 축제는 일 년에 한 번이며 사흘 동안 계속된다. 이 축제의 특징은 50~60명의 신랑 후보들이 한데 모여 처녀들에게 선을 보이는데 있다. 진기한 것은 총각들이 처녀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한다는 것이다. 얼굴에 분과 연지를 바르고 귀걸이 목걸이 팔지 등으로 요란하게 치장을 한다. 심지어는 이마와 양볼에 무늬를 그리고 입술에는 짙은 립스틱까지 바른다. 이들 사회에서는 키가 크고 눈이 큰 남자가 인기가 있다. 때문에 화장을 한 신랑 후보들은 선을 보이기 위해 일렬로 늘어서는데 이때 서로 키를 높이려고 발 뒤축을 치켜드는가 하면 눈을 부릅뜨고 눈동자를 굴리며 애교를 떠는 사람도 있다. 이 사회에서는 신부 후보가 귀한 편이다. 축제 마지막 날인 사흘째 밤은 마지막 기회다. 20여명의 처녀들이 신랑감을 골라 가면 그때까지도 남아 있던 총각들은 다음 해를 기대하면 쓸쓸히 낙타 등에 몸을 싣고 되돌아가야 한다. 다행히 제론볼 축제에서 처녀에게 선택된 총각은 일단 축제 현장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서로가 대화를 통해 뜻이 맞으면 양가에서 정식으로 결혼날짜를 택한다. 관례에 따라 신랑측이 신부측에 혼자婚瓷로 가축을 건네주고 잔치를 치르면 새로운 한 가정이 탄생된다.

◑ 일처다부제인 레레족 ◑

레레족은 자이르의 카사이주에 거주하는 총 인구 1만 명의 소수부족이다. 이들은 정글 속에 나무를 베어내고 공터에다가 야자나무 잎으로 간편한 집을 짓고 산다. 레레족은 전통적으로 같은 조상을 가진 이웃 마을을 서로 공격하여 여자를 약탈해 오는 관습이 있다. 이들은 여자 약탈 이외의 다른 이유로 상대를 죽이는 일이 없다. 큰 빚을 지거나 어떠한 큰 죄를 범해도 여자를 제공하면 모두 해결된다. 레레족 사회에서는 미혼 청년들이 이웃마을에서 약탈해온 여성과 프리 섹스 관계를 맺는다. 약탈해온 여자는 그 마을의 여러 청년들과 성 관계를 갖는데 이 여인을 '마을 여자'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이 '마을 여자'를 약탈하기 위해 이웃 마을과 목숨을 건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간단한 유혹으로 데리고 온다.
레레족 청년은 보통 18세 전후가 되면 3-4명이 공동의 한 아내를 갖게 된다. 이때 필요한 혼자(婚資)도 공동으로 부담하며 아내가 거주할 집도 공동으로 지어준다. 공동의 아내는 통상 '마을 여자'의 딸이 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웃 동네에서 약탈 또는 유괴해 온 여자를 택하기도 한다. 이웃 동네에서 와서 '마을 여자'가 되면 반 년 동안은 여러 명의 남편을 번갈아 가며 성적으로 환대해 주는 것이 그녀의 주된 일과이다. 물 긷기, 땔감 모으기, 요리 등 여성들이 하는 일상 생활의 가사 노동은 이 기간 중 면제된다. 때문에 '마을 여자'는 이때가 가장 즐겁다. 매일같이 치장만 하고 재잘거리기만 하면 되니까.

◑ 일처이부제인 하우사족 ◑

나이지리아 북부의 하우사족 사회에서는 일처이부(一妻二夫)제가 성행하고 있다. 이들 하우사족은 결혼한 여성이 첫 남편과 이혼하지 않고도 도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풍습을 갖고 있다. 이 풍습을 그들의 말로는 '자가(Zaga)혼인'이라고 한다. '자가'란 자기 아내를 남이 유괴해가는 것을 공인하는 제도다. 정확하게는 유괴라기 보다 여자 자신이 유괴당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첫 남편을 버리고 줄행랑을 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관례에 따르면 만약 유괴한 자가 그의 마을까지 무사히 여자를 데리고 가는데 성공하면 첫 남편은 아내를 되돌려 받기 어려워진다. 아내가 유괴되었을 경우 첫 남편은 재빨리 처가로 달려가 장인 장모에게 도망친 아내를 데려다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여인은 유괴자의 배우자로 공인돼 버린다. 그러나 이 경우는 이혼을 전제로 한 재혼이 아니므로, 유괴자가 새 남편으로 인정되더라도 전남편과의 부부 관계는 존속된다. 다시 말하면 한 여성이 두 남편을 섬기는 제도다. 즉 '자가'는 단순한 간통에 의한 부정한 남녀의 결혼이 아니라 첫 결혼과 마찬가지의 결혼으로 간주된다. 재혼 때도 첫 번째와 똑같이 혼자를 지불하고 혼인 의례도 성대하게 치른다.
하우사족의 경우 여자 아이는 3-6세때 부모에 의해 그 마을의 한 청년과 약혼을 하게 된다. 이 청년은 아이가 자라서 13-16세가 될 때까지 약혼녀의 집에서 10년 동안 하인처럼 일을 도와야 한다. 일을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에 따라 결혼식의 규모가 결정된다. 그러나 결혼 후 셋째 아기를 낳게 되면 그 여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남자를 골라 재혼 할 수 있다. 첫 결혼은 부모가 선택한 남자와 하고 재혼은 자신이 남자쪽에서 혼자를 지불하고 성대한 예식을 올린다. 그러나 재혼 이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새 남편의 승낙을 얻어 첫 남편을 방문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태어나는 아이들이 어느 남편에게 귀속되느냐 하는 것이다. 결국 실부보다 양부를 중시하는 사회이므로 서로가 나눠가진다.

◑ 모든 남녀에게 애인이 있는 탄자니아 투르족 ◑

탄자니니아의 투르족은 거의 모든 남녀에게 애인이 있다. 투르족 농민이나 목동들에게 있어서 결혼은 비즈니스에 지나지 않는다. 여자들은 어려서 결혼한 남편에게 애정을 계속 가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므뺘(연애)'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므빠'를 하고 안 하고는 자유이다. 연인들은 숲에서 서로 만나 선물을 교환하고 섹스한다. 현장을 들켰을 때에는 남자가 연인의 남편에게 양이나 소로 벌금을 내게 되어 있지만, 보통 무시된다.
투루족은 아들이 15세가 되면 할례의식을 행하며 난교의 축제를 한다. 첫날에 몇 쌍의 남녀가 성교를 도모하며 춤을 추고, 페니스나 질, 성교를 의미하는 노래를 춤에 맞춰 부른다. 만약 춤을 추는 데 있어서 성적인 '열기'가 부족하면 축제는 실패하게 된다. 밤에는 낮에 불렀던 노래의 내용을 실행에 옮긴다.

◑ 망령결혼제를 가진 탄자니아의 이라쿼족 ◑

탄자니아의 반농경 목축민인 이라쿼(Iraqw)족은 망령 결혼제를 가진 사회에 속한다. 이 사회에서는 망령 결혼을 시킬 신부를 한티(Hanteee)라고 한다. 어떤 가문의 아들이 결혼 전에 죽게 되면, 부모가 딸 가진 가난한 집을 찾아가서 죽은 아들 대신 청혼하여 상당한 혼자(婚資)를 지불하고 그 집 딸을 한티로 사 가지고 온다. 한티는 죽은 자의 형제나 아버지께의 친척과 동침하여 아기를 낳는다. 아기는 죽은 자의 자식으로 인지된다.
이라쿼족 사회에는 오랜 구전으로 전해오는 일화가 있다. 이들 부족 중에서 가장 부유하고 중심적인 추장 가문에 '애로'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애로는 결혼은 했으나 아들을 두지 못했다. 그러다가 네 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겨우 자식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애로의 맏형이 결혼 전에 죽었기 때문에 그가 네 번씩이나 맞아들인 여자는 모두 죽은 맏형의 한티들이라고 한다. 마을의 전설에 의하면 애로 자신의 그의 어머니의 망령 결혼으로 태어난 아들이라고 한다. 이라쿼족은 몇 대 전에 높은 지대에 거주하다가 지금의 초원으로 근거지를 이동해 왔는데, 그 당시의 추장이 애로의 아버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부족이 이동해 오던 중에 마사이족이 습격하여 추장을 살해하고 집을 불태웠으며, 어린 자식들도 모두 죽여 버렸다. 마침 살아남은 사람은 추장의 아내 즉 애로의 어머니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미망인은 가문을 잇고 재산을 상속시킬 아들을 얻기 위해 죽은 남편의 친족과 성 관계를 갖는 일종의 망령 결혼으로 애로 형제를 낳았다고 한다.

4.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 미국 ◑

1. 법적 결혼
치안판사나 등기소 직원의 입회하에 거행
비용있는 사람이 초대되며 호텔이나 컨트리클럽, 신부의 자택에서 열림.

2. 종교적인 의식
교회에서 성대하고 화려하게 치러짐.

1) 절차
신부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들러리를 대동한 채 부친의 손에 이끌려 성직자에게 인도.
성직자는 신부의 손을 신랑의 손 위에 겹치게 한다.
남편과 아내의 의무에 관한 성경구절을 낭독하고 결혼의 의의에 관한 메시지를 전함.
신랑신부의 결혼 서약과 반지교환이 있은 후 성직자는 이들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
식이 끝나면 하객들이 고회 문밖에 있다가 피로연장으로 가기위해 교회문을 나설 때 쌀알을 신랑신부에게 던진다.
쌀알을 던지는 관습은 신부의 다산과 가계의 번영을 상징한다.

2) 들러리
들러리는 친한 친구나 친지중 서너 명. 결혼식에서 중요한 증인.
결혼식 반지를 이들이 지니고 있다가 순서가 되면 신랑, 신부에게 건내준다.

3. 피로연

1) 장소: 신부의 집 정원, 교회의 집회 홀, 컨트리클럽, 호텔.

2) 일반적 형태
- 교회에서의 가벼운 스넥 정도의 피로연
- 호텔에서의 부케식 피로연

3) 식순
- 신랑신부를 위한 건배.
모두에게 삼페인이 부어지면 먼저 신랑의 가장친한 친구가 신랑신부를 위해 건배한다.
두번째로 신랑이 모두에게 감사함을 표시하고 신부를 위해 건배한다.
다른 사람들이 신랑신부를 위해 술잔을 들어 올린다.
-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이 보내온 축전을 낭독한다.
- 춤
첫번째. 신랑과 신부
두번째. 신부와 부친, 신랑과 모친
세번째. 신부와 시아버지, 신랑과 장모,
네번째. 신랑아버지와 신부 어머니, 신랑 어머니와 신부 아버지
마지막으로, 하객들.
- 신혼여행
피로연이 끝날 때쯤. 신랑신부는 연회장을 빠져나와 빈깡통이나 헌 구두를 달고, "이제 막 결혼 했음"이라고 낙서한 자동차를 타고 신혼여행길에 오른다.

◑ 멕시코 ◑

1. 결혼의 형태
전통적인 결혼식은 토착민 인디언의 전통에 서구의 기독교 전통이 혼합된 형태.
오늘날은 서양식 결혼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단지 몇몇 특수 지역에서만 전통 혼례가 이루어 짐.
멕시코시티 북동쪽 사까뿌아슬라 산맥의 고지에 자리하고 있는 인디언들은 마을 "산미켈 씨나까반"지역등에서는 전통적 결혼 풍습이 2백년 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전통 결혼은 결혼합의가 이루어진 날로부터 1년 간의 약혼기간을 거친 다음 혼례를 올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결혼은 신랑측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이다.

2. 결혼의 절차
첫번째. 먼저 청년은 신부될 여자를 자신의 부모에게 선을 보이고 결혼 승낙을 받는다.
두번째. 승낙이 이루어지면 신랑측 아버지는 신부의 부모를 찾아가서 결혼 문제를 의논한다.
세번째. 신부측 부모들이 결혼에 합의하게 되면 약혼이 성립된다.
약혼식과 같은 특별한 절차나 예물교환은 없고 팥의 씨를 뿌리고 집을 마련하는 등의 결혼식 준비를 한다. 만일 신랑이나 신부 중 어느 한 족이 단정치 못한 행위를 저지르거나 문제를 일으키게 되면 약혼은 파기될 수 있다.

3. 결혼연회
1년 간의 약혼 기간을 무사히 지나게 되면 양측의 부모가 만나 결혼 날짜를 정한 후 신랑측 아버지가 신부결혼연회는 결혼식 전날부터 시작해서 최소한 사흘간에 걸쳐 열리며 부유층의 경우엔 일주일 넘게까지 계속된다.

1) 참가자: 결혼식 전날 열리는 연회는 신랑측의 가족과 친지, 친구 등(신부측 사람들은 참석할 수 없다)

2) 장소: 신랑집. 이날에는 멕시코의 전통음식인 "치차로, 몰레, 또르띠야, 따말레스" 등의 잔치음식과 소주의 일종인 "아구아르디엔떼, 떼낄라등의 음료" 를 먹고 마시면서 밴드에 맞취 춤을 추며 밤새 연회를 즐긴다.

4. 결혼식
다음날 성당에서 혼례식을 치른다. 사람들이 모두 신부집으로 모여서 신부측 사람들과 함께 행렬을 지어 성당까지 걸어간다. 행렬의 선두에 신랑이 서고 그 뒤에 신부가 따르며, 양측의 하객들과 음악을 연주하는 악대가 신부 뒤를 따른다

5. 의복
1) 신랑: 흰색 저고리와 바지 우아라 체스(손으로 만든 전통적인 가죽신)를 신음.
2) 신부: 후이삘(온갖 꽃과 색실로 화려하게 수 놓은 전통의상)을입고, 또까도(색실 타래를 감 아 올린 장식물)를 머리에 얹는다.
3) 여자 하객들: 모두 색실로 수를 놓아 장식 한 흰색 옷
4) 남자 하객들: 흰색의 상하의 목에는 붉은색 스카프 머리에는 빨간 모자
* 결혼 복장에서 주목할 만한 흥미로운 사실은 남자들은 신발은 신고 있지만 신부를 비롯한 여자들은 신발을 시지 않은 맨발이라는 점이다.

6. 의식
성당에 도착하면 신랑신부는 성직자 앞에서 부부가 될 것을 맹세한 뒤, 예물(금이나 은, 또는 동으로 된 반지)을 교환한다.
종교 예식이 끝나면 모두 신부집에 모여 다음날까지 파티를 계속하며, 신랑신부는 파티가 끝난 후 보통 일 주일 예정의 신혼여행을 떠난다.

◑ 칠레의 마푸치인 ◑

칠레 남부에 살고 있는 원주민 마푸치 인들에게는 대대로 내려오는 일부다처제의 사회 불문율이 있다. 마푸치 사회는 일부다처제 사회로 남자의 경우 경제적 능력에 따라 거느릴 수 있는 만큼의 많은 여자들과 결혼하는 것이 허용된다. 남자가 두세 명의 아내를 거느리는 것은 보통이며 '울멘세스'라 불리는 부유층 남자의 경우엔 여섯 명 이상의 아내를 거느리기도 한다.
마푸치 사회가 일부다처제를 이루게 된 것은 남자들이 전쟁으로 인해 죽기 때문에, 자연히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승자들이 많은 여자들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푸치 사회의 일부다처제는 회교의 일부다처제와는 달리 성적인 매력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여자들은 성적으로도 완숙한 단계에 이른 연령이 되어서야 결혼을 한다. 결혼은 사위와 장인간에 신부를 사고파는 모종의 계약과 함께 성립되며 결혼식날은 신부를 환영하는 대대적인 마을 축제가 열린다.
한 남자가 여러 아내를 거느리지만 가족간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불문율이 있다. 즉 '우넨도모'라 부르는 첫번째 아내가 가정의 진정한 주부로서 비록 다른 아내들이 먼저 첫아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우넨도모가 낳은 아들이 장자가 되는 특권을 갖는다. 게다가 남편이 죽으면 우넨도모는 자유의 몸이 되지만 다른 아내들은 장자의 유산으로 남게 되고, 장자가 없는 경우에는 죽은 남편의 형의 재산이 된다.
마푸치 인들은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불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출산 후에는 불태워진 초라하고 작은 방에 유폐시키는 관습이 있다. 마푸치 사회는 여자가 간통을 범하게 되면 여자는 물론 정부도 죽음을 당한다. 이 처벌은 윤리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여자로부터 남편을 갖는 권리를 박탈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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